우리는 이 아우구스띠노에게서 가족을 위하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웁시다. 또한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들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바랐고 이를 위해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괴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행동으로 보인 성인의 모범이야 말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큰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이광헌 아우구스띠노는 1787년(정조 11년), 양반대가에서 태어났다. 1801년(순조 1년) 신유 박해(辛酉迫害)에 여러 순교자를 낸 경기도 경주 이씨는 그의 가문으로 1839년(헌종 5년) 7월에 순교한 성 이광렬(요한)은 그의 동생이며 그 해 9월에 순교한 성녀 권희(바르바라)는 그의 부인이고, 17세의 나이 어린 처녀로 순교한 성녀 이 아가다는 그의 딸이다. 그리하여 그의 가족은 네 명이나 다 함께 순교의 영광을 받았고, 성인 반열에 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본래 성격이 너그럽고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으나, 젊었을 때에는 절제함이 부족하였고 쾌락을 좋아하여 일찌기 유흥장 드나들며 다소 방탕하게 살았다고 한다. 30세가 채 못되던 해에야 비로소 천주교에 입교하여 그의 부인 권희와 함께 입교하고, 크게 회개했던 성 아우구스띠노를 본받으려는 뜻으로 그 역시 본명을 아우구스띠노라고 하였다. 그는 과거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새생활을 하던 중에 박해로 인하여 여러 차례 도망 다니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얼마 안되는 가산 마저 탕진하였다. 그러나 참다운 참회 정신으로 언제나 명랑하고 불평없이 살며, 냉담자들을 권면하고 외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에 있어 고생과 피로를 개의치 않았다. 그가 거처할 집조차 없게 되었을 때, 교우들은 서소문 밖 고마창골에 집을 마련하여 공소집으로 사용하면서 집을지키게 하였는데, 이때 그가 회장이 되었다.
그 당시 교회는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주막처럼 꾸미고 신자들이 모였는데, 1839년 4월 7일 (사백주일) 저녁에 어느 예비자가 밀고하여 포졸들의 습격을 받았다. 체포된 사람중에 예비신자의 아내가 있었는데 그는 아내를 돌려 달라고 청하였으나 풀어주지 않음으로 화가 가서 53명의 신자들의 명단을 다 알려 주었고, 이로 인해 아우구스띠노 회장의 가족들이 모두 체포되었다. 그는 긴 문초와 괴로운 형벌을 당하였는데 그 일부분을 소개한다. 포장은 갖가지 형벌과 회유책으로 배교를 강요하였다. "한 마디만 하면 너와 처자와 동생을 모두 놓아 주고 재산도 도로 찾게 해 주마." "제가 세상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이 제 종교이니 차라리 모든 것을 잃을지언정 교는 배반치 못하겠습니다." "너는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구나,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느냐?“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마음 약한 표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형리들은 그를 땅에 엎어 놓고 온갖 형구를 다 동원하여 모진 형벌을 가하자 구경꾼조차 얼굴을 돌려 보기를 꺼렸던 것이다. 형조판서는 "임금님께 순종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리 큰 죄는 아닐 것이다. 다른 죄인들은 나보고 살려 달라고 청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내가 너희들에게 살기를 원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는 이제 고문하는데 지쳐서 좋은 말로 회유하는 정책을 쓰기 시작하자, 이틈을 이용해 이 광헌은 자기의 두 자녀를 자기에게 돌려 보내 달라고 간청하였다. 판서는 "네 청을 들어 주마. 그리고 네 아내와 어린 것들은 배교하지 않아도 놓아 주겠다. 다만 네가 배교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하고 대답하자, 이 아우구스띠노는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사형선고는 받고, 서소문 밖에서 네번째의 칼에 목이 떨어져 순교하니, 때는 1839년 5월 24일이요, 그의 나이는 5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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